가을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은 눈眼의 계절 -김현승
이맘때가 되면
당신의 눈은 나의 마음
아니, 생각하는 나의 마음보다
더 깊은 당신의 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낙엽들은 떨어져 뿌리에 돌아가고
당신의 눈은 세상에로 순수한 언어로 변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가을 하늘 만큼이나 멀리멀리 당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서 생각하고
그눈을 나의 영혼 안에 간직하여 두는 것입니다
낙엽들이 지는 날 가장 슬픈 것은
우리들 심령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 ....
가을은 아름답다 -주요한
빗소리 그쳤다 잇는
가을은 아름답다
빛 맑은 국화송이에
맺힌 이슬 빛나고
꿩 우는 소리에 해 저무는
가을은 아름답다
곡식 익어 거두기에 바쁘고
은하수에 흰 돛대 한가할 때
절 아래 높은 나무에
까마귀 소리치고
피묻은 단풍잎 바람에 날리는
가을은 아름답다
물없는 물레방아 돌지 않고
무너진 섬돌 틈에서
달 그리운 귀뚜라미 우지짖는
멀리 있는 님생각 간절한
한 많은 철이여!
아름다운 가을이여!
가을의 끝 -릴케
언제부턴가 나는 모든 것이
변하여 가는 것을 보아 온다
일어서서 행동하고,
죽이고, 서럽게 하는 것들을
흐르는 시간의 사이사이에
정원들은 어드덧 모습이 달라진다
노랗게 물든던 정원의
누렇게 되어 비린 서서한 황페
길은 정말 멀기도 하였다
지금 텅 빈 정원에서
가로수길 너머로 바라다보면
엄숙히 드리운 닫힌 하늘을
아득히 먼 바다 끝까지
거의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