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의 학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그러나 그는 8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으며,
이 땅에 22만 호의 주택을 건설했는가 하면,
세계의 땅과 바다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맨손으로 상경해 96년 총매출액 70조원, 56개 계열사 21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국 최대 그룹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95년 미국의 포브스 지가 선정한 세계 9번째 부자 정 주영.
가난했던 시골 농사꾼에서 일약 세계적인 기업가로 발돋움한
그의 가슴속에는 과연 어떤 특별한 것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정 주영의
다섯 가지 성공 비결을 만나 봅시다.
1. 내 몸이 담보요.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가난한 농촌생활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에 네 번이나 가출합니다.
네 번째 가출 때
서울 신당동의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 취직하게 됩니다.
그는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몸 안 사리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스물 두 살에 경일 상회라는 자신의 쌀가게를 개업합니다.
그는 장사꾼에게는 신용이 생명이라고 생각해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정직한 거래로 차근차근 신용을 쌓은 덕분에
사업은 나날이번창했습니다.
정주영의 신용이 결실을 맺은 가장 좋은 예는 바로
'고령교 건설 공사'일 것입니다.
47년 현대건설을 세우며 건설업에 뛰어 든 정주영은
거창과 대구를 잇는 고령교 공사를 맡으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됩니다.
전후 혼란기에 물가가 10배가 넘게 올랐기 때문에
애초 계약한 공사금액이 원자재 값의 반도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건설 회사들은 공사를 포기하고 도망갔지만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고령교를 완공시켰습니다.
현대건설은 파산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사를 마친 신용을 인정받아
57년 당시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라는 '제 1한강교 복구 공사'를
맡을 수 있었고, 그 공사에서 커다란 흑자를 내며 오늘날 현대 그룹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현대건설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장 큰 사업 밑천인 신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 국 한 그릇, 반찬 하나
정주영 회장의 선친은 검소함으로는 인근에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퇴비로 쓰기 위해 길에 떨어진 개똥, 소똥 하나까지도
귀하게 모았으며, 오줌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고 소변도 꼭 집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알뜰함에 있어서는 정주영 또한 아버지 못지 않았습니다.
정 회장의 청운동 자택은 지금도 '58년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입니다.
거실의 소파와 탁자는 20년이 훨씬 넘었고,
17인치 컬러TV는 9년이나 되었습니다.
정 회장의 작업복은 69년 경부 고속도로 공사 당시부터 입기 시작한 것입니다.
30년 된 허름한 바지를 아직까지 입고 있는
세계 9번째 부자 정주영 회장.
어쩌면 그는 세계에서 9번째로 검소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3. 새벽닭을 깨우며 정 회장의 선친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정주영을 깨워 농토로 데려 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정 회장의 평생 재산이 되었습니다.
정 회장의 집은 새벽 4시쯤이면 부산해지기 시작합니다.
새벽마다 청운동 집으로 집합한 며느리들은 부지런히
아침 식사 준비를 마쳐 놓아야 합니다.
따라서 다섯 아들 역시 아버지를 따라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어김없이 아침 6시이며,
6시 반쯤에 계동 현대그룹 본사에 도착해 구내 이발소에서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시간은 정확히
아침 7시입니다.
저녁 취침시간은 9시 30분.
그래서 뉴스도 앞부분 주요 뉴스만 챙깁니다.
남보다 일찍 아침을 맞는 것은 남보다 몇 배의 삶을 사는 법이라며,
그날 할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일년 365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