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그만 브레이크 파열로 차는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가속도에 의해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버스 안에 손님들은 비명소리와 함께 공포에 질려
모든 것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 기사의 지혜로
버스는 안전한 평지에 다다랐고
차는 서서히 속도가 줄어졌다.
그때 저 멀리 도로 한 가운데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브레이크가 없는 버스 속에 모든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고 경적을 울리자
아이들은 재빨리 그 도로에서 피했지만
한 아이만은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혼자 놀고 있었다.
그 순간 버스기사는 아이를 피하기 위해
버스의 핸들을 틀어 언덕길로 곤두박질치느냐,
아니면 아이를 치고 갈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버스는 아이를 치고 말았고
언덕길에 이르러 버스는 멈췄다.
버스기사는 버스에서 내려 사고지점으로 달렸고
싸늘히 식어있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버스기사는 통곡하고 있었다.
모든 버스 속에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뒤엉켜
그 버스기사에게
‘이 살인마, 어떻게 아이를 죽일 수 있느냐’며
원망을 보냈다.
그러자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길
“여러분! 그러지 마세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저 버스기사랍니다.”
모든 사람들은 갑자기 숙연해진다.
이 글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바는 거의 같을 것이다.
비록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이지만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식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용기는
바로 살신성인의 정신이었다.
즉,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살신성인의 정신
이 말은 이순신장군이
자신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역사 속에 명언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요즘 고위직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올라 일의 의욕까지 상실될 때가 있다.
대부분의 고위층은
위장전입, 탈세, 탈루는 기본이고
병역비리를 포함한 기타 비리를
서비스로 가지고 살아가는 실정이다.
법이 있지만 돈으로 법을 사는 세상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의 눈치나 보는
사회풍토가 만연해 있다
국민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치러진
코메디같은 청문회 모습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엔 저렇게 청렴한 사람이 없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말을 주고받으면서
이 사회는 자연스럽게 저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서서히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간혹
장관은, 총리는, 고위층은 사람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
그렇다.
장관을 비롯한 이 나라의 지도층에 있는 위정자들은
일반 사람과 달라야한다.
일반 사람과 달라야만 많은 사람의 존중을 받으며
리더가 될 수 있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국가지도자가 일반인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누가 그 지도자를 따를 것인가?
만약 그들이 일반인과 다르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면
그 높은 자리는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입각한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살신성인의 정신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며
동기부여가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즐거운 명절되세요
양국진
모든 것을 걸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